에밀 클라우스
빛의 대가
에밀 클라우스는 벨기에의 화가였다. 에밀 클라우스는 1849년 9월 27일 벨기에 서플랑드르주(벨기에)의 릴 강변에 위치한 마을 생트엘루아비브에서 태어났다. 에밀은 13명의 자녀 중 열두 번째 아이였다. 아버지 알렉상드르는 잡화점 겸 주점을 운영했으며 한때 시의원이기도 했다. 어머니 셀레스틴 베르보와데는 브라반트 지방의 선장 가문 출신으로, 자녀들을 돌보느라 손이 부족했다. 어릴 적부터 에밀은 이미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일요일이면 이웃 마을인 와레험 아카데미까지 3킬로미터를 걸어가서 그림을 배웠다. 그는 금메달을 받고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아버지 클라우스는 아들이 그림 수업을 듣는 것은 허락했지만, 아들이 예술가의 길을 걷는 것은 원치 않았다. 대신 그는 에밀을 프랑스 릴에 있는 빵집으로 견습생으로 보냈다. 에밀은 거기서 프랑스어를 배웠지만, 빵 굽는 일은 분명히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벨기에 철도청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고, 아마 무역의 영업사원으로도 일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 에밀은 인근 하렐베케에 살며 가끔 가족을 방문하던 유명한 작곡가이자 음악가인 피터 베노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피터 베노와는 약간의 노력 끝에 아버지 클라우스를 설득하여 아들이 안트베르펜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다만 클라우스는 아들의 학비를 직접 부담해야 했다. 졸업 후 그는 안트베르펜에 머물며 살았다. 1883년 클라우스는 벨기에 동플랑드르주 데인제(Deinze) 근처 아스테네(Astene)에 있는 '존네스하인(Zonneschijn, ‘햇살’이라는 뜻)' 코티지로 이사했으며,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머물렀다. 그는 거실에서 릴 강(Lys)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경치를 즐겼다. 이 시골집의 넓은 공간과 밝은 빛이 분명히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 예술적으로 클라우스는 곧 번성했다. 유명인사로서 그는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과 자연주의 작가 에밀 졸라를 비롯해 벨기에 소설가이자 시인인 시릴 뷰스, 에밀 베르하렌, 폴 드 몽, 모리스 마테를링크 등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전시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했다. 에밀 클라우스의 삶에서 중요한 인물은 화가 제니 몽티니였다. 그녀는 아스테네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수강했고, 여러 해 동안 헨트와 아스테네를 오갔다. 클라우스는 그녀보다 26세 연상이었지만, 두 사람은 클라우스의 죽음까지 지속되는 관계를 맺었다. 그의 또 다른 사제(私弟)는 벨기에 예술가 안나 드 베르트였다. 그녀와 남편 모리스 드 베르트[nl]는 1890년대 여름을 그와 함께 보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클라우스의 국제적 성공이 중단되었다. 그는 런던으로 피신하여 템스강변에 집과 작업장을 마련했다. 그는 1918년에 돌아왔다. 1869년부터 1874년까지 클라우스는 풍경화가 야코브 야코브스를 비롯한 이들과 함께 앤트워프 왕립미술학원에서 수학했다. 그의 수학 기간 동안 클라우스는 현지 상류 중산층의 주목을 받고 그들의 호감을 얻었다. 예술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클라우스는 곧 번영했다. 앤트워프 미술관은 그의 작품 중 하나를 구입했고, 작은 강(리스강) 건너편에서 도시 부르주아지의 일요일 나들이를 바라보는 농부 가족을 그린 그의 유명한 작품 『피크닉』(1887년)은 벨기에 왕실이 구입했다. 클로드 모네의 영향을 받아 그는 ‘루미니즘(luminism)’으로 특징지어지는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1904년, 그는 예술가 그룹 ‘비 에 뤼미에르(Vie et Lumière, ‘삶과 빛’)’를 창립했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후 런던에서 돌아온 클라우스는 표현주의의 여명기와 맞물려 자신의 명성이 줄어든 것을 알게 되었다. 1921년, 그는 브뤼셀에서 마지막 회고전을 열었는데, 특히 런던(도시와 템스강을 그린 작품들)에 관한 작품들이 대중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작가이자 친구인 카미유 르모니에의 자극을 받고, 1890년대 파리 여행 중 접하게 된 클로드 모네와 같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아, 클라우스는 점차 자연주의적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매우 독특한 인상주의 스타일인 ‘루미니즘(luminism)’으로 전환해 갔다. 이는 그가 사용한 밝고 빛나는 색조 팔레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클라우스는 벨기에 뤼미니즘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1904년 그는 '비 에 뤼미에르(Vie et Lumière, '삶과 빛')'라는 협회를 설립했으며, '태양의 화가'이자 '리스 강의 화가'로 알려졌다. 그의 작품 중 훌륭한 예로는 《리스 강을 건너는 소들》(1899년)이 있다. 이 작품은 다양한 색의 소 무리가 작은 강을 건너는 모습을 묘사하며, 흐르는 물 위에 햇빛이 반사되고 있다. 이 그림은 브뤼셀(벨기에) 왕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런던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그는 모네의 화풍으로 템스강의 풍경을 그린 일련의 작품인 『템스강의 반영(Reflections on the Thames)』을 제작했다. 이 작품들은 그의 가장 전통적인 인상파 작품들이다. 1924년 6월 14일, 클라우스는 아스테네에서 사망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Bloemen, bloemen, bloemen …”(‘꽃, 꽃, 꽃…’)이었다. 죽기 전날, 그는 벨기에 엘리자베트 여왕이 보내준 꽃다발의 파스텔화를 그렸다. 클라우스는 아스테네 자신의 정원에 묻혔으며, 브뤼셀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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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orks by this artist (37 total)
- Profile of a Woman and Wheatsheaves
- Village de Deurle 1895
- Children in a landscape
- Afternoon in Estérel (Côte d’Azur) 1914
- Fog, Lanternes Allumées
- Soirée D’été 1895
- In The Garden
- The Mosque Of Sidi Boumediene 1879
- Ampelio, old fisherman of Bordighera circa 1898
- The flower garden in may
- Meule de Foin 1909
- Jeune fille aux cheveux blonds
- The Market in front of the Theatre in Antwerp
- Sunset 1911
- Zomerlandschap – Korenveld
- La Chasse
- Flaxweeding in Flanders 1887
- Tree in the sun 1900
- Brume, vapeur et fumée sur la Tamise 1916
- Summer 1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