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에르난데스 모리요
아카데미즘 화가, 페루 초대 미술학교장
다니엘 에르난데스 모릴로는 아카데믹 양식의 페루 화가로, 생애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냈다. 또한 국립미술학교의 초대 교장으로도 재직했다. 그의 어머니는 페루인이었고, 아버지는 스페인 출신이었다. 그는 네 살 때 리마로 데려와졌으며, 열네 살에 이탈리아 태생인 레오나르도 바르비에리의 스튜디오에서 예술 교육을 시작했다. 바르비에리는 골드러시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초상화가이자 다게레오타입 사진사로 일했다. 나중에 바르비에리가 리마를 떠난 후, 에르난데스는 그의 미술 수업을 맡았다. 1872년, 그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라는 작품을 그려 마누엘 파르도 대통령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유럽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장학금을 받았다. 그는 1874년 페루를 떠났다. 파리에 도착한 후, 그는 동료 페루인 이그나시오 메리노를 만나 로마에서 공부할 것을 권유받았다. 그는 그렇게 하여 9년간 로마에 머물며 마리아 포르투니 등과 함께 작업했다. 1883년, 그는 파리로 돌아와 거주하는 스페인어권 예술가들로 구성된 '스페인 화가 협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그는 '프랑스 예술가 협회' 회원이었으며, 살롱에서 정기적으로 작품을 전시했다. 1912년, 그는 몬테비데오, 부에노스아이레스, 로마를 여행하며 전시를 했고, 1918년 파리로 돌아왔다. 얼마 후, 그의 동생 이노센시오는 도미니코회에서 중요한 지도자 직책을 얻었으며, 아마도 그의 영향으로 대통령 호세 파르도는 에르난데스에게 새로운 미술학교 설립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립고등자치미술학교'는 1919년 개교했으며, 에르난데스가 초대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1932년 사망할 때까지 그 직위를 유지했다. 그의 출생지 근처인 팜파스 시를 포함하는 지역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Artworks by this artist
- Muchacha Con pato (The duck Girl) 1887
- Mujer En Reposo (Daydreams) 1886
- Woman In The Bois De Boulogne c. 1885
- Lover’s tryst
- Perezosa (Idle Woman) 1906
- Pierrette c. 1878
- The Model c. 1900
- On The Balcony
- Il Corso Mascherato, R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