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코스타
애국적 풍경화가 마키아이올리 영감
조반니 코스타는 흔히 니노 코스타로 알려져 있으며, 이탈리아의 풍경화가이자 애국적 혁명가였다. 조반니 코스타는 1826년 10월 15일 로마에서 태어났으며, 조아키노 코스타(1842년 사망)와 마리아 키아피(1857년 사망)의 16명의 자녀 중 열네 번째였다. 그의 아버지는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레 출신으로 젊은 시절 로마로 이주하여 양모 방적 공장을 차리고 부와 지위를 얻었다. 가족은 공장 근처인 트라스테베레 지역의 산 프란체스코 아 리파 광장에 있는 큰 저택에 살았다. 12세 때 조반니는 신고전주의 화가 빈첸초 카무치니 남작을 만나 자연과 주변에서 보는 것을 바탕으로 작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 직후 그는 몬테피아스코네의 예수회 대학에 보내져 그곳에서 5년을 보냈다. 코스타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843년에 로마로 돌아와 줄리아 거리에 있는 반디넬리 대학에서 2년간 수학했다. 이 대학은 1678년 바르톨로메오 반디넬리가 설립한 곳으로, 그는 그곳에서 루이지 두란티니에게 소묘를 배웠다. 이후 빈첸초 카무치니의 공방에서 잠시 일한 뒤 산 루카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프란체스코 코게티, 프란체스코 포데스티, 필리포 아그리콜라 밑에서 공부했다. 그는 1848년 가리발디 휘하에서 싸웠고, 1859년 전쟁에서는 지원병으로 복무했다. 이탈리아 통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1870년에 다시 적극적으로 드러났는데, 당시 그는 피아 문 근처의 로마 공성전에서 가장 먼저 성벽의 돌파구에 올랐다. 그동안 그는 피렌체에 정착했는데, 그곳에서도 낡은 전통으로부터 예술의 독립을 위한 그의 투쟁은 마찬가지로 치열했다. 여기서 그는 <안치오 항구 해변의 소녀>(Donne sulla spiaggia di Porto d'Anzio)를 완성했다. 그는 또한 뛰어난 독창성을 지닌 풍경화가로 명성을 얻었으며,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찰로의 회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주로 목동과 소가 등장하는 전원 풍경을 그렸다. 그는 '마키아이올리'라 불리는 예술가들에게 주요한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수많은 영국 및 미국인 친구와 추종자들을 두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은 엘리후 베더, 매슈 리들리 코벳(1850–1902)과 그의 아내 이디스 코벳, 그리고 칼라일 경이었다. 또한 파리를 방문하던 중 만난 코로 및 바르비종파와도 긴밀히 교류했다. 1853년에는 당시 로마에 머물고 있던 젊은 프레더릭 레이턴과 평생의 우정을 쌓았다. 그의 로마 추방은 1862년까지 계속되었다. 1904년에는 런던에서 그의 그림 전시회가 열렸으며, 테이트 갤러리에도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그는 1903년 1월 31일 마리나 디 피사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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