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거채
북송 화원 화조화 기준 확립
황거채(黃居寀, 933년~993년 이후)는 자(字)가 백란(伯鸞)이며, 성도(현재의 사천성) 출신으로 오대십국 시대의 유명한 화가 황전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꽃과 대나무, 화조화를 잘 그렸으며, 후촉의 궁정 화가로 일했다. 후촉이 멸망하고 그가 송나라에 들어간 후, 송 태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황씨 가문의 회화 기법은 북송 초기 한림도화원에서 그림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는 윤곽선을 그리는 데 뛰어나 강劲하고 안정적인 필치를 보였으며, 색채 사용은 풍부하고 화려했다. 정원의 대나무와 새를 묘사한 그림은 생생하고 자연스러웠다. 기암괴석과 산수화는 아버지의 작품조차도 능가했다. 아버지처럼 후촉에서 궁정 화가로 일했으며, 송나라에 들어간 후에도 같은 직책을 유지했다. 또한 궁전의 벽, 병풍, 커튼 제작에도 협력했으며, 그의 작품 수는 너무 많아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