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바우티스타 마르티네스 델 마소
벨라스케스 모방, 바로크 풍경 대가
후안 바우티스타 마르티네스 델 마소는 스페인 바로크 초상화 및 풍경화 화가로, 장인인 벨라스케스의 가장 뛰어난 추종자였으며, 다른 어떤 예술가보다도 벨라스케스의 양식을 더 가깝게 모방했다. 마소 자신도 훌륭한 화가였으며,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사라고사의 풍경'이 증명하듯 풍경화의 대가였다. 마조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출생 날짜와 장소는 불확실하다. 그의 부모인 에르난도 마르티네스와 루시아 부에노 델 마조가 그 지방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는 쿠엥카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 자료는 마드리드를 그의 고향으로 간주한다. 그의 어머니가 1596년에 태어났고 그가 1633년에 결혼했을 때 아마 20대 초반이었을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의 출생 연도는 1612년경으로 추정된다. 그의 훈련 장소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결혼 전에 분명 Velázquez의 작업장에 있었을 것이므로, 그가 미래의 장인의 제자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Mazo는 1633년 8월 21일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교회에서 이 유명한 화가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딸 Francisca de Silva Velázquez y Pacheco와 결혼했다. Philip IV와 총리인 Count-Duke of Olivares가 부부의 후원자를 맡았다. 이 결혼은 궁정에서의 Mazo의 미래 성공을 보장한 사건이었다. Velázquez는 즉시 왕실 직책을 마련했고, 1634년 2월 23일 국왕의 허락을 받아 자신의 King's Chamber의 Usher 직위를 Mazo에게 양도했다. 이로부터 Mazo가 이미 이 유명한 화가의 제자였으며, 그날부터 함께 살고 협력한 장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Velázquez는 흔들림 없이 Mazo의 경력을 발전시켰고, 그와 나중에는 Mazo의 자녀들을 위한 궁정 직책을 확보했다. 1643년, Mazo는 제도장이자 스페인 왕위 계승자인 아스투리아스 공 Baltasar Carlos의 개인 화가가 되었다. 1645년 공은 그의 다섯 번째 아이의 대부가 되었다. Baltasar Carlos 공은 그에게 Paul de Vos, Rubens, Jordaens 및 기타 플랑드르 화가들의 사냥 장면을 모작할 것을 의뢰했다. Mazo는 1646년 공과 함께 Aragón으로 동행했다. 이 여행 동안 그는 유명한 『View of Saragossa』와 16세의 나이에 갑자기 사망한 어린 공의 마지막 초상화를 그렸다. 공의 사후, Philip IV는 Mazo가 받아오던 특전이 계속되도록 명령했고, 그를 화가로 계속 고용했다. Mazo는 처음에 Tintoretto, Titian, Paul Veronese와 같은 왕실 컬렉션 소장 베네치아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자신의 재능을 발현했고, 이 작업을 근면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모사가로서 그의 색채가 풍부한 작품은 당시 거장들, 특히 Rubens와 Jordaens의 비밀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러한 모사 작업은 그가 제작한 Velázquez의 왕실 초상화 복제품 제작과 마찬가지로 그의 오리지널 작품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상당히 줄였음에 틀림없다. 한 예로 그가 그린 Infanta Margaret Theresa의 초상화를 들 수 있는데, 오늘날 빈의 한 박물관에서 Velázquez의 원본 옆에 전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azo는 탁월한 실행력과 생생한 사실주의를 향한 자신의 성향을 자유롭게 좇았다. Mazo는 자신의 작품에 서명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이는 Velázquez의 작품과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켜 그들의 그림에 대한 작가 구분을 어렵게 만들었다. 실제로 학자들이 그의 작품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는 현존하는 그림은 거의 없다. 여기에는 View of Saragossa(1646년, Prado), Portrait of Queen Mariana in Mourning Dress(1666년, National Gallery, London), The Family of the Painter(약 1660–1665년,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가 포함된다. 그의 작품 일부는 Prado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의 스승의 작품 근처에 있다. 마소는 초상화가로서 뛰어난 기술을 습득했지만, 그의 가장 흥미로운 작품들은 현실을 존중하며 더 개인적인 양식을 발전시킨 사냥 그림과 풍경화이다. 이 작품들은 극도로 세밀하게 처리된 수많은 인물들로 생동감을 띤다. 그의 풍경화는 그의 그림인 『사라고사 풍경』과 『아란후에스의 사슴 사냥』에서 보여지듯 뛰어난 관찰력의 결과물이다. 이 두 작품은 모두 펠리페 4세의 의뢰를 받은 것이다. 그는 몇 점의 정물화도 그렸다. 1657년 마소는 나폴리에서 미망인이 된 장녀 이네스의 지참금을 되찾기 위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 동안 마소는 로마 풍경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티투스 개선문』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