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
남송의 현명한 군주
송 효종(조신)(1127년 11월 27일 ~ 1194년 6월 28일), 자는 원영으로, 송나라의 제11대 황제이자 남송의 제2대 황제였다(재위: 1162년 7월 20일 ~ 1189년 2월 18일). 조신은 수주 청산문(현재의 저장성 자싱시 일부)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이름은 백종이었다. 그는 송나라 개국 황제 조광윤의 7세손이었으며, 친아버지는 조자칭이었다. 소흥 2년(1132년), 그는 송 고종 조구에게 궁중에서 양육되었으며, 이듬해 이름이 원(瑗)으로 바뀌었다. 소흥 5년(1135년), 그는 건국공의 작위를 받았다. 소흥 12년(1142년), 그는 푸안 군왕으로 진봉되었고 궁전을 떠났다. 소흥 30년(1160년), 그는 황실 종친으로 왕에 봉해지고 건왕의 작위를 하사받았으며, 이름을 위(瑋)로 고쳤다. 소흥 32년(1162년), 그는 황태자에 책봉되고 이름은 신(昚)으로 개명되었다. 같은 해, 고종 황제는 조신에게 양위하여 송나라 황위를 왕조 창시자의 계통에 돌려주었다. 조신이 즉위하자 그는 야심차고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악비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장준을 등용하며, 중원 수복을 위해 '융흥 북벌'을 단행했다. 그러나 참패를 당한 후 그는 금나라와 '융흥 화의'를 체결할 수밖에 없었고, 송과 금 사이의 평화가 회복되었다. 그 후 그는 내정에 주력하여 관료 기구를 개편하고 불필요한 관직을 폐지하며 재정 관리를 우선시하고 어려운 백성을 도왔다. 남송은 안정된 시기를 겪었는데, 역사적으로 '건순의 치'라고 불린다. 조신은 남송에서 가장 유능하고 현명한 황제로 여겨지며, 사가들은 그를 '남도 제왕 중 으뜸'이라고 칭찬했다. 순희 16년(1189년), 조신은 고종을 위해 3년간 상을 치렀다는 이유로 황태자 조돈에게 제위를 선위하고 '수성 태상황제'로 존숭되었다. 그러나 조돈이 불효한 행보를 보이자, 조선은 선위 후 우울증에 빠졌으며, 소희 5년(1194년)에 68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그의 묘호는 효종이며, 시호는 철문신무성효황제(후에 소통동도관덕소공철문신무명성성효황제로 추증됨)이며, 영부릉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