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브라보
피렌체 바로크 프레스코 화가
체코 브라보는 피렌체 바로크 학파의 이탈리아 화가였다. 그의 본명은 프란체스코 몬텔라티치이다. 그는 조반니 빌리베르티에게 사사했으며 시지스몬도 코카파니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1620년대 초에는 마테오 로셀리의 공방에서 일했다. 1629년까지 그는 자신만의 독립된 작업실을 갖추었다. 기록에 남은 그의 초기 작품은 성모, 성 요한 및 천사들을 그린 프레스코화(약 1628/1629년; 피렌체 산 마르코 성당)와 <자비> 그림(피렌체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성당)이다. 1633년에는 피스토이아의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성당에서 베르나르디노 포케티가 1601년에 시작했던 연작을 이어받아, 진복자 보나벤투라 보나코르시의 생애 장면을 담은 여섯 개의 반월형 벽화를 그렸다. 또한 임프루네타의 메초몬테에 위치한 빌라 코르시니를 위해 어린이들의 놀이와 <광란의 오를란도>의 이야기를 묘사한 프리즈 장식(약 1631년)을 제작했다. 그는 피렌체의 부오나로티 저택 도서관 장식을 위임받았다. 도서관 천장에 <명성>을 완성한 후, 그는 후원자의 과도한 간섭에 환멸을 느껴 벽면에 피렌테의 명사들을 그린 패널화는 도메니코 풀리고와 마테오 로셀리(1636년)를 포함한 다른 화가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또한 그는 피티 궁전의 은의 방에서 조반니 다 산 조반니가 시작했으나 사망으로 미완성된 작업을 오타비오 반니니 및 프란체스코 푸리니와 함께 완성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로렌초 데 메디치를 기리기 위한 이 프레스코화들은 페르디난도 2세 데 메디치가 우르비노 공작의 딸과 결혼하기 전인 1635년에 발주한 것이다. 남쪽 벽면에는 브라보가 <평화의 사자로서의 로렌초>를 완성했다. 브라보는 반케토니 기도소 벽면에 '쿼드리 리포르타티' 프레스코화를 제작한 팀의 일원이었다. 이 기도소에는 산 조반니, 피에트로 리베리, 발다사레 프란체스키니(일 볼테라노)의 프레스코화도 소장되어 있다. 귀도 레니가 이전에 같은 주제로 묘사한 바 있는 '아우로라'를 그린 브라보의 캔버스 회화는 몬테치토리오 궁전에 소장되어 있다. 1659년, 체코는 레오폴도 데 메디치 추기경의 추천으로 티롤 대공 페르디난트 카를의 아내 안나의 궁정 화가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 제안을 수락하고 인스브루크에서 생애 마지막 2년을 보냈다. 필리포 발디누치가 그의 후원자 중 한 명이었으나, 브라보는 발디누치가 집필한 피렌체 예술가 전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하워드 히바드는 피뇨니, 푸리니, 브라보의 회화에 나타난 몽롱한 관능미와 카를로 돌치의 경건함을 대조했다. 브라보는 피렌체 화파 특유의 인물 윤곽선을 과감히 허물고 전반적으로 대담한 필치를 추구하여 거의 '터치파 화가'에 가까워진 몇 안 되는 화가 중 한 명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그가 베네치아에서 접한 영향, 예를 들어 베르나르도 스트로치로부터의 영향으로 보기도 한다. 체코 브라보는 펠리체 피케렐리(일 리포소)에게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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